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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손주선 |
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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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6-08-22 |
조회 |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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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사시대] 이스라엘 지파 간의 전쟁 [레위인의 첩 강간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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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374년부터 B.C.1334년 경까지 옷니엘(othniel : '하나님은 능력이시다'의 뜻)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되어 활동할 당시 이스라엘은 매우 고통스럽고 많은 시련이 뒤따랐던 시기였다. 즉, 이 시기는 민족 전체를 영도하는 전 민족적 지도자가 없었고 통일 정부도 없었기 때문에 이상하리 만큼 비조직적인 혼돈기였다.
이러한 때에 베냐민(Benjamin) 지파에 속한 비류(匪類 : 히브리어로 '악한 배교자'들을 가리킴)들이 어떤 레위인의 처를 강간하여 죽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에브라임 산지에서 살던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한 첩을 취하였는데,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넉달 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 그때에 에브라임 산지 구석에 우거하는 어떤 레위 사람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첩을 취하였더니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돌아가서 거기서 넉달의 날을 보내매."(사사기 19:1~2)
그래서 그 레위인은 그의 첩을 데려 오기 위해 하인 하나와 나귀 두필을 대동하고 그녀가 거주하고 있는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4박 5일을 유숙한 후 그 레위인은 그의 첩을 데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그 레위인 일행은 저녁이 다 되어서 여부스 성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부스 성읍이 외인들의 성읍인 까닭에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여장을 풀었다. 이는 외인들이 거주하는 성읍보다는 이스라엘에 속한 지파가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였다.
"그 사람이 다시 밤을 지내고자 아니하여 일어나 떠나서 여부스 맞은편에 이르렀으니 여부스는 곧 예루살렘이라 안장 지운 나귀 둘과 첩이 그와 함께 하였더라 그들이 여부스에 가까왔을 때에 해가 지려하는지라 종이 주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가 돌이켜 여부스 사람의 이 성읍에 들어가서 유숙하사이다."(사사기 19:10~11)
하지만 베냐민 지파가 거주하는 기브아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했고, 단지 베냐민 지파의 어떤 노인만이 그들을 집으로 정중하게 안내했지만, 이마저 그 성읍의 비류들이 그 집을 에워싸고 동성애를 즐기려 했기 때문에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집 주인 그 사람이 그들에게로 나와서 이르되 아니라 내 형제들아 청하노니 악을 행치 말라 이 사람이 내 집에 들었으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보라 여기 내 처녀 딸과 이 사람의 첩이 있은즉 내가 그들을 끌어내리니 너희가 그들을 욕보이든지 어찌하든지 임의로 하되 오직 이 사람에게는 이런 망령된 일을 행치 말라 하나 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 그들이 그에게 행음하여 밤새도록 욕보이다가 새벽 미명에 놓은지라."(사사기 19:23~25)
이 일이 있은후 그 레위인은 그 집에 도착 하자마자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열 두덩이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 보냈다.
"그의 주인이 일찌기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떠나고자 하더니 그 여인이 집 문에 엎드러지고 그 두 손이 문지방에 있는 것을 보고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하나 아무 대답이 없는지라 이에 그 시체를 나귀에 싣고 행하여 자기 곳에 돌아가서 그 집에 이르러서는 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사사기 19:27~29)
이 사건을 접한 이스라엘은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를 알아보기 위해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미스바(Mizpah)로 모였다.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사사기 20:1~3)
그리고 이를 확인한 후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에게 그 악행을 한 비류를 내놓을 것을 요청했지만 베냐민 지파는 이를 거부함에 따라 이스라엘 11지파(40만명)와 베냐민지파(50,700명)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11지파에서는 40,030명이 전사했고, 베냐민 지파에서는 600명을 제외한 50,100명이 전사했다.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사사기 20:9~11)
다행히 도망한 베냐민(Benjamin) 지파 육백 명은 이스라엘 11지파의 배려로 길르앗(Gilead)과 실로를 쳐서 처녀 육백 명을 보쌈 방식으로 베냐민 자손에게 줌으로써 베냐민 지파의 종족 보존이 가능할 수 있었으며, 이스라엘이 남왕국 북왕국으로 나뉘어 질 당시에는 남쪽 유다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사사기 20:47)
"만일 그 아비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쟁론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컨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찌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사사기 21:22~23)
베냐민(Benjamin : '오른 손의 아들'이란 뜻, B.C.1885-1805)은 야곱(Jacob, B.C. 2006~1859)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Rachel)에게서 낳은 열 두번째, 곧 막내 아들이다. 라헬이 베냐민(Benjamin)을 낳고 죽을 당시 그의 이름은 '베노니'였으나, 야곱(Jacob)이 '베냐민(Benjamin)'으로 개명했다.
"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 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창세기 35장 18절)
베냐민(Benjamin)은 그의 형 요셉(Joseph, B.C.1915~1805)과 함께 야곱(Jacob)의 편애를 받으며 성장했는데, 이는 그가 그의 부친 야곱(Jacob)에게는 유일한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애굽으로 내려갈 당시 베냐민(Benjamin)의 가족은 열 네 명이었다.
"베냐민의 아들 곧 벨라와 베겔과 아스벨과 게라와 나아만과 에히와 로스와 뭅빔고 훕빔과 아릇이니 이들은 라헬이 야곱에게 낳은 자손이라 합 십 사 명이요."(창세기 46:21-22)
그러나 야곱(Jacob)이 임종을 앞두고 그의 아들들을 축복 할 때 베냐민(Benjamin)에게는 '물어 뜯는 이리여서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눈다'고 했다. "베냐민은 물어 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창세기 49장 27절)
B.C.1446년경 출애굽 당시 베냐민(Benjamin)의 후손은 35,400명이었으나,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B.C.1406~1381) 당시에는 45,600명으로 늘었다. 그리고 옷니엘(othniel)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사사가 되어 활동할 당시 베냐민(Benjamin) 지파는 50,700명으로 증가했었다.
베냐민(Benjamin) 지파의 자손 중 유명 인물로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Saul, B.C. 1090 ~1010)과 바사제국 아하수에르(Xerxes, B.C.485-464) 시대에 총리대신까지 오른 모르드개[Mordecai), 그리고 사도 바울(Paul, B.C.2년경 - A.D.67) 등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로마서 11장 1절)
"베냐민 지파에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요 스롤의 손자요 베고랏의 증손이요 아비아의 현손이라 베냐민 사람이더라 기스가 아들이 있으니 그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는 더 하더라."(사무엘상 9:1-2)
만약 이스라엘 사사시대(B.C.1380~1050) 지파 간의 전쟁 당시 베냐민(Benjamin) 지파가 종족 보전에 실패했다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놀라울 뿐이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린도전서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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